한국인의 전통재래시장 화천오일장 그 장터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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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시장, 전통오일장, 전통시장특산물, 재래시장의 맛과추억

한국인의 전통재래시장 화천오일장 그 장터이야기

우리의 재래장 화천오일장 장터를 보다

 화천시장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북쪽에 자리를 잡고 있는 전통시장이다. 이런 지리적인 특징으로 해서 나타나는 차이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현지인보다 군인이 더 많이 거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곳에서 근무할때 외박이라도 나올때면 화천이라는 동네가 얼마나 크게 보였는지 가슴이 설레던 시기가 아스라이 추억으로 떠오른다. 군 부대와 군인들이 많다는 것은 산업적인 면에서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화천은 2차산업이 거의 발전하지 못하고 1차산업에 종사하거나 3차산업인 서비스에 종사하는 사람들로 나뉜다. 또한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은 상서면과 사내면 경우 군인들과 면회객을 대상으로 하는 상가나 숙박업소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화천시장은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시장 통로에 비가림 시설을 설치하고 지붕을 교체했으며, 주차장과 화장실을 신축했다. 또 2007년에는 무질서하게 달려있는 간판들을 건물과 업소의 특성이 잘 반영된 간판으로 바꾸어 깔끔하게 분위기를 조성시켰다. 그후에도 상가 도색을 하면서 꾸준하게 시장 정비를 하면서 고객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 오고있는 것이다.

 화천군은 고구려때는 생천(牲川)군 또는 야시매로, 신라시대때는 낭천(狼川)이라 불렸다. 생천은 생이 소를 뜻하고 낭천의 낭은 이리 또는 짐승이라는 말을 뜻하는 것으로 이름만으로도 화천이 산간벽지였음을 알 수있다. 고려때는 화천(和川)이라고 불렸는데, 지금의 화천(華川)이라는 이름은 1902년 고종때 일이다. 화천군의 진산인 용화산(龍華山)이 아름답고 높아서 그것을 본받기 위해 화천이라는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 산으로 에워싸인 화천은 오랫동안 주로 수로를 통해 바깥세상과 교류했다. 교통이 수로에서 육로로 바뀌는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화천을 가로지르는 북한강을 통해 물자를 수송했으며, 그때 서울로 보낸 것중 하나인 통나무도 <강원도 장타령>에 나올 정도로 유명하다.

1945년 해방이되면서 화천은 북한 지역이었다가 한국전쟁때 치열한 전투를 거쳐 남한에 편입되었다. 부근의 파로호는 이승만대통령이 붙인 이름인데 파로라는 말은 오랑캐를 격파시켰다는 뜻이다. 그만큼 전투가 치열했음을 보여준다. 조선시대 기록인 <동국문헌비고>를 보면 화천에는 읍내장 하나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이 시장마저 곧 폐지되었다. 화천은 그만큼 경제적으로 매우 열악하였음을 알 수가 있다. 주로 화전을 일구며 사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시장 또한 발달할 수 없었다. 그만큼 자급자족의 삶을 대부분 살았고 생활이 넉넉하거나 풍요롭지 않았다.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화천에는 시장이 여러 곳 생겼다. 1912년의 기록에는 읍내장과 산양리장, 인마리장 3개의 장이 개설되었고, 이 가운데 읍내장이 지금까지 이어져 화천시장이 되었다. 읍내장은 도시의 행정기관이 있는 중심지에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화천시장의 장터는 소금배가 드나들던 강가에 있었다. 오늘날 화천으로 들어가는 화천교 옆 남강나루터 건너편 주차장 자리가 과거의 장터였다. 거기서 정기시장과 우시장이 함께 섰다. 화천댐 건설로 오일장은 천변의 제방에서 열렸고 화천시장은 지금의 시장터로 옮겼었다.

화천이 활성화되기 시작한 것은 화천의 산천어 축제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였다. 시장이 시설 현대화를 시작한 2003년에 처음 열린 화천 산천어 축제는 해를 거듭할수록 찾는 사람이 늘고 있는 추세고 그만큼 시장을 찾는 사람도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산천어가 국내 고유어종이 아니고 전부 수입한 어종이라는 것이 아이러니컬 할 뿐이다.

화천시장은 화천군청과 화천 공영 버스터미널 사이에 있고 길이 1자 형태이기 때문에 한번 들어가면 끝까지 가야하므로 물건을 팔기에는 좋은 형태를 띠고 있다. 오일장은 상설시장과 버스터미널 사이로 난 도로를 따라 길게 늘어선다. 매월 3, 8일에 열리는 이 오일장은 강원도에선 제법 규모가 큰 편에 속한다. 1960년대 이후 화전민들의 주요 농작물은 옥수수였다. 옥수수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자라고 씨를 뿌린 후 한번 정도만 김을 매면 수확할 때까지 잘자랐다. 이런 이유로 화천에서는 옥수수 농사가 성행했고 자연히 옥수수를 이용한 음식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올챙이ㄱㄱ수와 올챙이묵들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올챙이국수는 찐 옥수수를 맷돌에 갈아서 기계에 넣고 면을 뽑아 찬물에 헹구고 양년장을 넣어서 먹는다. 국수발이 올챙이처럼 불룩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인데 먹어보니 맛은 그리 특이한 것은 아니었다. 과거에 양식이 없을때 주식으로 많이 먹었기 때문이고 지금은 별미로 많이 먹는다. 옥수로 만든 인절미도 화천 특유의 음식인데, 가격은 일반 인절미보다 비싼데 향토음식으로 판매되고 있는 실정이다.

https://youtu.be/oznYuN7BdW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