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재래장 그 장터에서 배우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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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시장, 전통오일장, 전통시장특산물, 재래시장의 맛과추억

한국인의 재래장 그 장터에서 배우다<2>

한국인의 재래장 그 장터에서 배운 이야기

 한국인의 재래장 오일장시장에서는 농산물, 수산물, 임산물 육 해 공에서 건져올린 온갖 물품들로 가득하다. 눈이 항시 즐거운 그곳에서 또 더 반가운 것들을 볼 수 있다. 바로 우리 국산품, 국내산이다. 특히 시장에 오면 웬만한 것을 빼고선 다 우리 땅과 바다에서 가져온 물품들이라고 우린 믿는다. 물론 이웃나라들에서 온 물건들도 많다. 하지만 시장에 나가보면 곡물류든 좌판의 생선이든 또한 산나물이든 그 앞에 국내산, 국산이라는 팻말과 글귀가 훨씬 많이 눈에 띈다.

 그렇다. 시장에 오면 엿장수의 호박엿도 국산품이라 마음 놓고 먹고, 냉이든 산 더덕이든 당연히 국내산이라 믿고 우리는 돈을 주고 산다. 한국인의 재래장인 우리의 장터에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 땅에서 나는 제품들로 가득 차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기에 시장에서 물건들을 사고 있다. 이건 뭘 의미할까. 우리의 장터 좌판 위의 물건들은 신토불이라는 강한 믿음이 깔려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바로 신뢰(Trust)다. 서로가 믿음이라는 신뢰가 깔려있기에 가격 흥정을 하며 덤으로 더 달라고 실랑이를 벌이며 사는 것이다. 물건에 대한 믿음이지만 이는 결국 사람과 사람에 대한 신뢰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작금의 사회는 신뢰보다 불신이 훨씬 더 많이 깔려 있는게 현실이다. 어떤 이유로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됐는지 우린 모르지만, 어떻든 살고 있는 이 현실에선 일단 색안경을 끼고 사람을 쳐다보는 게 순서이다. 안타깝다. 한 사람 한 사람 개인 스스로가 신뢰를 지니고 살아간다면 모두가 믿고 살아갈 수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나 한국인의 재래장인 우리의 장터에선 늘려있는 잡곡이 국산이고 좌판 위의 산나물이 모두 국내산이 아니던가. 장터의 신뢰를 배울 필요가 있진 않을까. 이것이 내가 장터를 다니며 네번째로 깨달으며 배웠던 것이다.

 재래장 장터 시장에 가보면 항상 시끄럽다. 큰소리와 작은 소리가 뒤섞여 구석구석이 시끄러운 곳이 시장이다. 시장 장터 바닥이 조용하면 재미가 없다. 손님과 상인 간에 물건을 놓고 흥정을 하든, 상인들끼리 이야기를 하든, 웃고 떠들고 고함치며 사는 곳이 우리네 장터이다. 그렇지만 싫지가 않다. 시끄러워야 살아있는 것 같고 내가 그 속에서 외톨이가 아님을 느낄 수 있기에 오히려 시끄러움을 즐기게 된다.

 대형마트처럼 진열된 매대 속에서 조용히 둘러보다 필요한 것만 바구니에 담는 그런 게 아니다. 물론 이런 시끄러움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외로움이 싫기에 시장의 시끄러운 소리가 오히려 정겹다. 우리의 장터는 무조건 시끄러워야만이 살아갈 수 있다. 소리가 끊긴 정적은 시장에서는 필요가 없다. 시장이 조용하다면 그 속에서 소통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 한국인의 재래장 장터인 우리의 시장은 서로가 소통(Communication) 될 수 있게 하는 곳이다. 소통을 배우게끔 해주는 곳, 그곳이 바로 우리의 시장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혼자서는 살아갈 수가 없는 존재다. 즉 서로가 소통하며 살아가겠끔 만들어진 존재가 우리 인간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상대에게 불통하며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진 않은가. 한번 주위를 돌아보자. 진정으로 소통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잘 보이질 않는다. 답답하다.

답답하기에 서로에게 욕을 하고 비난을 퍼붓고, 그러다가 입을 다물고 만다. 소통이란 단어가 꽤나 어렵게 느껴지는 지금의 현실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재래장인 오일장 장터들을 다니면서 나는 그 장터의 왁자찌걸 떠드는 시장의 소리에 조금은 신이 났다. 나 역시 물건을 놓고 흥정을 하고 시식을 하며 그 시끄러움 속에 나를 묻히며 돌아다녔다. 그렇게 소통 속에서 신이 났고 재미있었으며, 살아있음을 배웠던 것이다. 이것이 한국인의 재래장인 우리 장터에서 내가 깨달은 다섯번째 배움이 아닐까 한다.

 두 물줄기가 어우러지는 '아우라지'에서 정선아리랑이 울려 퍼지고 있다. 그 아리랑을 듣기 위해 장터에 들렀건만 11월에 이미 끝나 아쉽게도 텅 빈 무대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무대만 비었지 재래장 장터 구석 구석에서 아리랑이 들려오고 있질 않은가.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주게, 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때맞춰 관광객들을 가득 실은 아리랑 열차가 역에 도착하고 사람들이 쏟아져 밀려온다. 눈을 뜨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허공만 보이지만...

 그렇다. 정선의 시장은 아리랑 민요가 흐르는 한국인의 재래장의 민요 장터다. 여기서는 그냥 물건만 파는 시장이 아니고 스토리까지 담아 파는 시장임을 나는 알았다. 폐광이 된 지역에서 시장을 일으켜 세운 힘이 바로 문화였고, 문화로 얘기를 엮은 스토리(Story)였음을 나는 똑똑히 보고 배웠다. 그만큼 스토리의 힘은 크고 무서웠다.

한 사람이나 한 가정이 아닌 지역 전체를 일으켜 세운 무서운 힘. 강원도 골짜기에서 보고 들은 그 스토리는 나에게도 있고 우리에게도 있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 이것이 바로 스토리가 아니던가. 새로이 변화된 모습의 사람들이 서로 신뢰하고 소통하면서 살아온 인생의 역사가 바로 스토리다. 이 스토리의 무서운 힘이 나를 살리고 우리 사회를 똑바로 세울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아리랑이 흐르는 한국인의 재래장인 이 정선 장터에서 여섯번째의 진실함을 배웠던 것이다. 

 물 맑은 곳을 찾아간 시간이 마침 점심때라 북적거리는 사람들을 따라 헤집고 들어간 먹거리 천막 속. 선지가 듬뿍 들어간, 갖은 양념으로 맛을 낸 뚝배기 해장국을 참 맛있게 먹었던 양평 장터의 해장국. 배를 든든히 채우고선 시장 구석구석을 구경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양평 오일장이었다. 그런데 재래장 장터 시장을 이리저리 거닐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양평 해장국을 전주에서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곳에서도 분명 양평 해장국집이라고 간판에 적혀 있었다. 그런데 여기뿐만이 아니다. 대구에도 양평 해장국, 부산에도 양평 해장국 심지어 제주도에도 양평 해장국이 있다. 아니 양평 해장국이란 브랜드로 음식을 팔고 있다.

​ 조선시대에는 한양에서 양평 해장국이 유명했지만 지금은 나라 전체에서 양평 해장국이란 이름으로 팔리고 있다. 놀랍다. 양평 해장국은 이제 양평만이 아닌 어느새 전국 브랜드(Brand)가 되어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참 대단하다. 그 옛날 조그만 한 지역에서 술 마신 뒤 속 풀려고 먹던 해장국이 어느 사이 전국에서 똑같은 이름으로 팔리는 상품이 되었으니 브랜드의 힘이 참으로 대단하지 않은가.

상품뿐만 아니라 이젠 개인도 브랜드가 되는 퍼스널 브랜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역량을 갈고닦아 수많은 대중 앞에 빛을 내고 있는 개인 브랜드들이 얼마나 많은가. 비단 연예계 뿐만이 아니다.  모든 부문에서 개인의 브랜드는 대세가 되어버렸다. 우리도 자신의 브랜드를 높일 줄 알아야 되지 않겠나 싶다. 이젠 개인 브랜드 시대에 살고 있다. '나의 장점을 인내하며 갈고닦아 강점으로 변화시키고, 그 변화된 모습으로 신뢰를 주고 소통을 나누며 살다 보면 어느덧 인생의 스토리가 브랜드가 되어 빛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우리 모두 그런 인생을 살아가야 되지 않을까. 그리해야 이 사회도 좀 더 발전되고 밝아진 모습으로 변해 있지 않겠나 싶다. 이것이 우리의 재래장인 그 장터에서 느끼고 깨달았던 나의 마지막 일곱번째의 배움이었던 것이다.

하나의 작은 오일장에 첫발을 디디면서 보고 느꼈던 한국인의 재래장 장터의 풍경, 그 풍경이 어느새 나에게 깊은 깨달음을 주었고 그 깨달음으로 인해 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게 되었다.

https://youtu.be/oznYuN7BdW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