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전통 재래장 강원 삼척오일장 장터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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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시장, 전통오일장, 전통시장특산물, 재래시장의 맛과추억

우리 전통 재래장 강원 삼척오일장 장터이야기

강원 삼척오일장의 장터이야기

삼척에서 열리는 장은 콩, 옥수수, 보리, 버섯, 왕마늘, 토종꿀, 수산물이 많이 나오는 삼척장과 콩, 옥수수, 감자전, 순대, 수산물과 탄광촌으로 잘 알려진 도계장, 근덕장 그리고 왕마늘, 농산물, 문어, 수산물이 거래되는 호산장 등이다. 우리 전통재래장 강원 삼척 중앙시장은 1975년 10월11일 전통시장으로 개설되었다. 매월 2일과 7일 열리는 정기 오일시장이자 상설시장으로, 본인이 직접 재배한 것을 팔 수 있는 직거래 장터가 따로 있어 상인이 아닌 사람도 물건을 팔 수가 있는 것이다.

과일, 채소, 해산물 등과 기본 생활용품을 거래하는 일반시장 역할을 하고 있다. 강원 삼척 중앙시장은 대지 1만 1637평방미터(3500여평)에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로 되어있으며 건물 안에 점포는 약 500개 정도 있다. 우리 전통재래장 강원 삼척 중앙시장은 삼척시 중심지역에 있는데, 바다가 있어 생선을 취급하는 점포가 많다. 다른 시장에 비해 수산물을 취급하고 있는 곳이 많아서 그런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것같다. 주변에 보면 농협 하나로마트, 홈플러스, 축협 하나로마트 등 전문 대형 유통업체들이 있어 주변여건이 불리한 입장에 놓여 있기는 하다.


 삼척은 산과 강 바다가 어우러진 지역이다. 조선시대까지는 군사적인 요충지로 영동 9개 군의 병권을 관장하는 영장(營將)이 있었고, 일제 강점기 때에는 풍부한 지하자원으로 틴광이 개발되면서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시장이 발달하고 번창했다. 특히 1916년 삼척항이 자리를 잡고 1937년에 일제가 세운 삼척개발주식회사를 통해 삼척관광과 삼척철도, 북삼화학 등 광공업이 발달하면서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삼척으로 몰려들었다. 삼척은 이러한 배경으로 인구가 꾸준하게 늘어났고, 시장 또한 우후죽순처럼 여기저기에 개설되었다. 1940년대 삼척에는 모두 12개의 시장이 개설되어 있었다.

 시골장은 경로당처럼 노인들의 천국이다. 오래된 삽처럼 금방 부서져 버릴 것같은 몸집으로 쪼그리고 앉아 장을 지키고 있는 할머니들이 많다. 그들이 그나마 전통장을 지키는 기둥이고 마지막 장꾼들일 것이다. 숲속에 나무가 서 있는 것처럼 때론 자연스럽고 때로는 애처롭고 짠한 모습들이 오랫동안 시선을 붙들어 묶는다. 삼척 도계에 탄광이 30여개 있을 때에는 장터가 성황을 이루었다. 탄광이 성황을 이룰때는 장터에 모인 사람들만 2만이 넘었다고 한다. 1990년대부터 리어카나 경운기 대신 장을 꾸리기 편한 자동차를 개조해 이동하는 장돌뱅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여, 지금은 전국의 장터를 돌아다니며 기업 형식으로 움직이는 사람들도 많다. 전통 재래장의 맥을 잇기가 어려운 현실이 된 것이다.

 통일신라 이전에는 삼척지역이 실질국, 실직곡국이라 불렸다. 실직국은 강릉의 예국, 울진의 파조국과 함께 바다를 따라 세워진 창해 삼국 가운데 하나였다. 실직이라는 뜻은 쇠를 지킨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이는 삼척이 철광석의 대표적인 산이였음을 나타내는 지명이다. 삼척이라는 이름은 통일신라시대 경덕왕때 불리기 시작했는데 지금껏 그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삼척이라는 말은 셋이 함께 오른다는 뜻이다. 우리 전통 재래장 강원 삼척오일장은 참으로 유래가 깊은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삼척은 그 이름에서 암시되어 있는 것처럼 산과 강과 바다가 한데 어우러진 지역이다. 1000 m가 훌쩍 넘는 산들이 하늘을 향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파란 하늘빛을 그대로 담고 있는 시퍼런 동해는 망망대해의 태평양으로 향하고 있다. 삼척에는 오래전부터 정기시장이 형성되었다. 1770년에 편찬된 <동국문헌비고>에 따르면 당시 삼척지역에는 2, 7일에 열리는 도상면의 북평장, 5, 10일에 열리는 장성면의 대전장이 개설되어 있었다. 그중에 북평장은 현재 삼척이 아닌 동해시에 속해있다. 1980년 삼척의 북평읍과 명주군의 묵호읍이 합쳐져 동해시가 되었기 때문이다.

영동지역의 도시들은 대체로 태백산맥과 동해사이를 지나는 해안도로를 따라 형성되어 있는데, 삼척은 경상북도에서 강원도로 넘어가는 관문에 자리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역로가 있었고, 삼척 지역에 6개의 역이 존재했는데 시장이 형성된 곳은 이 역들이 있는 곳이었다. 오늘날 경상도에서 삼척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동해와 나란히 남북으로 이어져 있는 7번 국도를 이용해야 한다. 이 7번 국도는 조선시대에 역로였던 길인데, 지금처럼 자동차가 다닐 수 있도록 넓어진 것은 1916년 삼척과 강릉, 삼척과 울진을 잇도록 7번 국도가 개설된 이후이다.

삼척의 지리적인 환경으로 예부터 다양한 산업이 발전했는데, 좁지만 산에서 흘러드는 하천들로 인해 형성된 농경지를 활용해 쌀을 비롯해서 옥수수, 두류, 서류 등이 생산된다. 최근들어 고랭지 채소를 많이 재배하고, 산지의 목초지를 활용해서 한우 외에 돼지, 사슴, 산양, 닭 등을 사육하는 농가도 많다. 삼척은 한류와 난류가 교류하는 동해와 접해 있어 수산업도 활발하다. 계절에 따라 명태, 오징어, 꽁치 등이 주로 잡히며 미역도 많이 생산된다. 다만 대체로 소형 어선에 의지하는 연안어업이 발달해 영세한 규모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전통 재래장 강원 삼척오일장은 삼척을 가로질러 흘러가는 오십천과 멀지 않은 곳에서 선다.삼척 종합 버스터미널과 삼척시청 사이에 있으며, 관동팔경 가운데 하나인 죽서루와도 그리 멀지 않다. 시장 입구에는 주차장이 있으며 오일장이 서는 날에는 삼척 중앙시장의 둘레와 그 인근의 골목까지 빼곡하게 좌판이 펼쳐지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삼척의 먹거리 가운데 첫 손에 꼽히는 것은 곰치국이다. 곰치는 물메기라고도 불리는데 살이 부드럽고 담백하다. 주로 묵은 김치와 함께 끓여낸 곰치해장국의 원조가 바로 삼척이다. 곰치는 매우 못생기고 살이 물컹물컹해서 예전에는 환영받지 못했다. 심지어 어선에 큰 곰치가 걸리면 재수없다며 나루터에 버리기도 했다. 가난한 부녀자들이 그렇게 버려진 곰치를 주워 인근의 장이나 마을을 돌아다니며 팔았었다. 그러나 오늘날 곰치는 귀한 신분이 되었고 삼척의 대표 음식으로 알려지면서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가격이 올랐기 때문에 '금치'라는 별명이 붙기도 한다.


 삼척의 관광지는 관동팔경 중의 하나인 죽서루와 암벽사이로 흐르는 오십천의 아름다움이 있으며, 석회동굴로 유명한 환선굴이 있다. 환선굴 안에 들어가보니 정말 신선이 있었던 동굴처럼 신비롭기만 하였다. 삼척은 55개의 석회동굴을 지닌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동굴 도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