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재래장 일제시대와 해방이후 역사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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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시장, 전통오일장, 전통시장특산물, 재래시장의 맛과추억

한국인의 재래장 일제시대와 해방이후 역사편

일제시대의 시장과 해방이후 한국의 전래시장의 변화

일제가 1901년 한국을 병합. 강점하자마자 총독부에서는 한국의 모든 시장에 대해 도지사의 허가없이는 새로 시장을 설치(新設)하거나 기존의 시장을 변경할 수 없도록 묶어 놓은 다음 1914년 시장 규칙을 제정 발표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밟아 한국의 모든 시장은 일제의 손아귀에 그야말로 완전히 들어가게 되었고 장악되었다.

일제에 의해 분류된 한국의 시장 종류는 다음과 같이 구분되었는데 살펴보면 이러하다. 재래(在來)시장, 공설(公設)시장, 어채(魚菜)시장 및 중앙도매시장, 곡물과 유가증권 및 현물거래소(1931년에 폐지)였다. 그리고 일제는 한국 전래의 전통시장을 재래시장(在來市場)이라고 불렀고 기타의 시장을 신식시장(新式市場)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일제는 시장규칙 발표와 동시에 한국의 전래시장(傳來市場)에 대해 무거운 세금 징수에 착수하였던 것이다.

조선왕조 시대에 왕실과 육조에서 수요(需要)되는 물품에 대한 독점공급을 담당했던 육의전은 1910년 한일합방에 의한 왕조의 몰락과 그 운명을 같이 하게된다. 원래 육의전은 귀족 계층만을 위한 관상(官商)일 뿐 백성들의 생활물자 공급을 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해방이후에는 혼란의 시대였기에 1945년 8월 15일부터 1951년 6월까지의 6년 동안은 도매시장에 관한 법도 없었으며 행정력도 전혀 없었다. 공백(空白)의 무법 혼란의 기간이었다. 이 시기에는 일제에 의하여 개설 운영되어 왔던 중앙도매시장이 일제의 관행을 승계하여 모방 운영되었다.

그런데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끈질기게 버텨 내려오던 위탁상들이 해방이 되자 우후죽순처럼 여기저기서 되살아나 활기를 띄게되면서부터 농수산물의 도매 상권은 위탁상들의 손에 의하여 거의 장악되었다. 1951년 6월에 중앙도매시장법이 제정. 공포되어 1도시 1시장의 원칙하에 법정 도매시장이 첫 출발을 하게 된다. 하지만 과거부터 도매 업무를 수행해오던 위탁상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아, 이들 수많은 위탁상들이 막강한 자금력으로 생산자와 수집상들을 대상으로 전대금(前貸金)을 살포하며 광범위하게 산지 출하자들을 장악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에서는 아무런 정책적 행정적 노력도 보이지 않은 채 방치하여 정책 부재로 인한 정책공백 시대를 맞고 있었다. 우리의 시장은 비로소 1960년대 이후로 농협이 농수산물 도매기능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면서 정부의 새로운 인식 변화도 생기기 시작하여, 여러 부침을 겪어오면서 서서히 현대 시장으로 발전하기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일제 강점기 이후부터 해방과 전쟁의 공백시대에 우리의 전통적인 전래시장의 흐름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